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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벗의 신발이 섬돌에 다다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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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26 작성일: 23-09-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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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누구나 한 번쯤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큰 이층집이라든가, 바닷가에 위치한 집이라든가, 통창이 있는 집이라든가..
크기든 위치든 형태든 다양하게 꿈꿔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 역시 그런 상상을 하며 그것을 글로 남긴 경우가 왕왕 있는데,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로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발행한 <임금이 부른들 이 집에서 나갈까>라는 책에 실린 이용후의 <구곡유거기>인데요,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구체적으로 그린 점이 퍽 인상적입니다.
집의 크기도. 위치도, 형태도, 모두 중요하지만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가까이 함께 할 것인가가 가장 으뜸인 것 같습니다.
이용후, <구곡유거기> -어느새 벗의 신발이 섬돌에 다다르면
나는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도성 안에 구석지고 조용한 변두리를 골라 소박하게 몇 칸 짓고 싶다.
굳이 깊은 산, 사람 발자국도 없는 골짜기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방 안에는 거문고와 책, 술동이와 바둑판을 두어야지.
얼키설키 쌓은 돌이 그대로 담장이 되고,
땅을 조금 일구어 아름다운 나무를 심어야지.
알록달록 예쁜 새가 그 나무로 날아와 절로 지저귀겠지.
나무를 심고 남은 땅에는 남새밭을 가꾸어
채소를 심어야지.
채소가 자라면 캐서 술안주로 삼아야지.
콩 시렁, 포도나무 시렁을 만들어 서늘한 그늘을 드리울 것이다.
처마 앞에는 꽃과 돌을 늘어놓을 텐데, 희귀한 꽃이 아니라
사시사철 연이어 피는 것으로 심어 놔야지.
돌은 들고 오기 힘든 것은 가져오지 않고,
작아도 울퉁불퉁 특이한 것을 갖다 놓겠다.
마음이 맞는 벗에게 크기도 위치도
비슷한 집을 하나 짓게 해서 이웃으로 삼아야지.
엮은 대나무로 문을 달아 마음 내킬 때마다
편하게 서로 오갈 수 있게 할 것이다.
난간에 서서 벗을 부르면 부르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벗의 신발이 이미 우리집 섬돌에 다다르게 하리라.
아무리 심한 비바람도 우리 사이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넉넉하게 즐기면서 함께 늙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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